자동차

페라리 역사 여행

맨즈하비 2020. 12. 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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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 맨즈하비 입니다~!

 

오늘은 람보르기니의 라이벌!

람보르기니가 지금까지 있게 한 원동력 아니 생겨나게 한 장본인 인 페라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중학교 때 엔초 페라리를 처음 접하고 뛰었던 그 심장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네요,, 

 

물론 지금 보면 조금 올드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그 페라리의 포스는 감출 수가 없는 건 여전한 것 같습니다. 

 

페라리 현재의 본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고 하네요. 저는 이탈리아에 있는 줄 알았네요.

아무튼 포드 v 페라리 영화에서 아주 잘 표현한 것 같은데요.

피아트에 매각한 이후 FCA 산하의 브랜드였지만 단독 상장을 위해 분사하였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소유권은 여전히 FCA 그룹에 있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살펴보면요!

1929년에 만들어진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로써 모데나라는 도시에 있으며 아마추어 레이서들과 알파로메오(자동차 브랜드입니다.)의 차량을 지원 관리해주던 그룹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이렇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조그마하게 시작해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 지금의 명성이 있는 

페라리가 된 것이죠.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들고 운영하던 엔초 페라리는 차를 좋아하여 본인도 현역 레이서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알파 로메오라는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를 아주 잘해나가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다 1938년에 엔초 페라리는 알파로메오 레이싱팀의 우두머리로 올라가게 되었죠.

이 스토리는 제가 지금 꿈꾸고 있는 그런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팀은 스폰서와 자동차의 기본적인 품질 문제로(여기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직접 말을 한 트랜스 미션의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갈등을 겪다가 알파로메오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알파로메오가 이 정도 평판이 된 건 이때부터인 건가 싶네요.

아 물론 욕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도 레이싱에 대한 열정도 있고 좋은 자동차 회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룰 20대 자동차 기업 역사 편에서도 같이 다뤄 볼 예정입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이유로 알파로메오를 떠나온 엔초 페라리에게 좋은 대접을 할리가 없었던 알파 로메오는 엔초 페라리에게 모든 방해공작을 펼치게 되는데요. 그중의 하나가 엔초 페라리의 이름으로 회사를 4년 동안 설립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페라리는 또 분노의 동기부여를 받게 되어 알파로메오보다 인정받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차를 만드는데 관심이 없던 엔초 페라리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와 동일하게 알파로메오에게 분노를 느끼고 차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인데요. 이렇게 알파로메오 덕분에 페라리가 나왔고, 페라리 덕분에 람보르기니가 나왔고, 람보르기니 덕분에 파가니가 나온 셈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차차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파가니 덕분에 슈퍼카 회사인 마잔티나 달라라, 노블 등등, 인지도가 매우 낮은 많은 슈퍼카/스포츠카 회사들도 동기 부여를 받아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엔초 페라리는 자신이 직접 레이스카를 만들기 위해 모데나에 Auto Avio Construzioni를 설립했는데요.

이때 페라리 815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밀레 말리아 레이스를 포함하여 13개 이상의 레이스에 참가하였고요.

여기에서 6번의 우승을 하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자동차 경주는 금지되었는데요.

전쟁 때문에 자동차의 판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모데나의 페라리 공장은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포드 공장도 남북전쟁 때에 군수물자 생산 공장이 되었었죠... 그리고는 전쟁 도중에 폭격을 맞게 되었고 페라리는 지금의 공장인 마라넬로 시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알파로메오의 방해공작이었던 4년간의 본인 명의의 회사 설립 금지라는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된 엔초 페라리는 마라넬로에 Ferrari S.p.A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서는 본격적으로 레이스카를 직접 제조하는 레이싱팀을 꾸리게 되는데요.

 

저도 이번 글을 공부하면서 페라리의 전신이 많고 또 쉽지 않게 페라리가 되는 과정을 보며, 역시나 어떤 큰 일을 하려면 고통과 인내는 수반된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ㅠㅠ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이싱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져 도로 주행이 가능한 166 Inter를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엔초 페라리는 일반 도로주행용 자동차 생산에 회의적이었었죠. 이때 람보르기니가 찾아왔고 주행성능을 지적하는 람보르기니를 내쫓아 버리게 되었겠죠?? 하지만 이것도 돈이 있어야 하니 이때부터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레이스에 출전하는 완성차 업체가 아닌 경주에 나갈 돈을 벌기 위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페라리는 최고의 레이싱팀이자 최고급 스포츠카 메이커로서 입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하지만 주식 상장 등을 목표로 2016년, FCA그룹에서 분사되어 독립하여 완벽한 독립 브랜드가 되었는데요. 유념해야 할 것은 FCA 산하에서는 분리되었지만 페라리의 최대주주는 FCA의 모기업인 엑소르라는 회사였습니다..

처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 한 기업인데요,...

엑소르는 피아트의 창립 가문인 아넬리 가문이 소유한 기업이라고 합니다.

현재도 피아트 계열 인물인 존 엘칸이 각각 사장으로 있는 돈 많은 회사였습니다. 

페라리는 지금 슈퍼카 생산업체들 중 파워트레인 기술에 있어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페라리 감성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 같은데요.

70년대까지는 창립자인 엔초부터가 공기역학을 '파워트레인을 못 만드는 자들이나 만지는 것' 정도로 과소평가했었기 때문에 F1 레이스에서는 타사 대비 기술 연구가 좀 늦었다고 합니다.

이 고집 또한 페라리를 지금의 페라리로 있게 한 원동력이긴 하지만, 그 고집 덕분에 맞는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자동차에서 공기역학을 빼놓고 갈 수 없는 부분이죠.. 공기역학 성능의 우수성을 깨닫게 되면서 F1에서 사용한 가장 선진적인 공기역학 기술들을, F1에서 축적한 파워트레인 기술력과 함께 더불어 양산 차량에 가장 빨리 적용시키는 걸 보면 고집 센 엔지니어 이면서 좋은 건 금방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면을 두 가지 다 갖춘 완벽한 사람 같네요... 양산 차량이라 해봐야 일 년에 총합 몇 대 안 되는 고가의 페라리라 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로고에 대해서 살짝 살펴보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페라리의 로고는 이탈리아어로 Cavallino Rampante, 영어로는 'Prancing Horse'라고 부르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약자인 S.F와 말이 노란 방패를 배경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 위에 이탈리아의 국가 상징 색을 칠한 형태입니다. 한국도 태극기의 색을 자부심 있게 딱 박아주는 자동차 회사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이 상징은 엔초가 알파 로메오의 레이서 시절일 때 만난 바라카 백작 부인이 파일럿으로 싸우다 전사한 자신의 아들이 전투기에 도색한 말 표식을 엔초에게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마크의 시작이 됩니다.

엔초의 고향인 모데나시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바탕으로 하고 본래 빨간색이었던 말을 검은색으로 바꾸어 사용한 게 바뀐 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여기까지 간단하게 페라리를 살펴봤습니다.

 

역시나 좋아하는 것과 공부하면서 보는 건 차이가 있지만 조금 더 디테일하게 알게 되어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럼 좋아하는 차, 타고 싶은 차 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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